북한군이 가장 두려워하는 부대는?



대한민국 육군에 소속되어 있는 모든 사단은 자기 부대 나름대로의 자랑할 만한 역사와 전통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부대마다 하늘을 찌르는 높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단 중에서도 무조건 1등을 해야 하는,,,


1등이 아닌 2등은 죽기보다 싫어하고 북한군을 대한민국 육군에서 가장 증오하는,,,,


그리고 북한군이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육군 부대가 있습니다. 바로 무시무시한 부대 마크 '백골부대'로 많이 알려진 메이커 부대 육군 제3보병사단입니다.


사실 3사단 백골부대는 육군계의 해병대라고 불릴 정도로 모든 훈련 강도가 높고 또한 보기만 해도 살벌한 느낌이 드는 해골이 상징으로 적국인 북한군을 공포에 떨게 하는 부대입니다.




백골부대인 육군 제3사단은 6.25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 최초로 북진하여 38선을 돌파한 것으로 유명해졌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북한군을 끊임없이 괴롭혀온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면 왜 북한군이 한국 육군 소속 백골부대를 보면 치를 떨게 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지금부터 북한군이 육군 제3사단 '백골부대'를 왜 두려워하는지 그 5가지 이유를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백골부대의 연혁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육군 제3사단 백골부대는 지난 1947년 2월 1일에 창설된 조선경비대 3여단을 시작으로 하여 1949년 5월 12일에 제3보병사단으로 승격되었습니다.


2019년 올해로 백골부대 부대 창설 70주년을 맞게 되었는데요, 지금부터 육군 3사단 백골부대와 관련하여 간략하게 안내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백골부대는 중부전선 철원에 위치하여 있고 군사분계선과 남방한계선인 최전방 GOP를 지키고 경계하는 철책 사단입니다.



백골부대는 특히 육군 수색 대원들 중에서도 베스트 오브 베스트 인 수색 대대 백골 용사들이 굉장히 유명한데요, 힘든 훈련 강도와 전투력으로 인해 제3보병사단은 수색 대대는 수많은 육군 사단들 중 유일하게 '백골전우회'라는 자신들의 전우회를 갖추고 있는 부대라고 합니다. 해병대 전우회와 같은 맥락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백골부대의 시초는 6.25 한국전쟁 당시에 '진백골 연대'로 불리던 제18연대 장병들이 "전쟁 중 죽어 백골이 되어서라도 끝까지 조국을 수호하고, 두고 온 북녘땅을 자유의 품속으로 되찾고야 말겠다"라는 엄청난 굳은 각오를 다지며 자신들의 철모에 직접 백골을 그려 넣어 전투에 참가하면서 모티브가 되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백골부대'라는 부대 애칭은 6.25 전쟁이 종료된 후 1962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3사단 백골부대가 왜 북한군의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되었는지 그 이유 5가지를 알아보겠습니다.



첫 번째, 북한군 역시 의식하고 있는 백골부대만의 과격한 파이팅 구호




먼저 제3보병사단만큼 대놓고 이렇게 북한과 김정은 정권을 무자비하게 까(?)는 부대는 없습니다. 북한을 완전히 부숴버리겠다는 의지로 창설된 백골부대는 "김정은은 미친개! 몽둥이가 약! 약! 약", "북괴군의 가슴팍에 총칼을 박자!!", "쳐부수자 북괴군, 때려잡자 김정은!" 등 정식 구호만 봐도 북한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실제로도 북한 정부는 이러한 대적과 구호를 의식해서 이례적으로 육군 사단 자체를 비난하고 보복 위협을 하기도 했죠. 참고로 제3보병사단의 대부분 막사에서 북한 지도부와 부대 지휘관들의 영정사진을 흔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북한군을 두렵게 한 단 '포탄 1발'



지난 1973년 3월 7일, DMZ 비무장지대에서 백골부대원들은 표지판 정기보수 작업을 마치고 귀대하던 중 기습적으로 북한군으로 총격을 받는 사건이 발생되었습니다. 당시 육군 제3사단장이었던 백골부대 박정인 사단장은 즉각 대북방송을 통해 북한군에게 대남 사격 중지를 요청하였지만 방송을 들은 북한군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대남 사격을 이어가는 도발을 하자 박정인 사단장은 사단 포병대대 총동원 명령을 내린 후 105mm와 155mm 곡사포를 북한을 향해 발사하였습니다. 제3사단장 박정인 장군은 6.25 전쟁 휴전 이후에 북한 군영에 처음으로 포탄을 발사 한 최초의 지휘관이 되었습니다. 당시 포탄 발사 이후 북한군의 정확한 피해 상황은 알 수 없었지만 1975년도에 귀순한 북한군 유대운 소위의 생생한 증언에 따르자면 "그날 백골 포병부대의 포탄 1발이 정확하게 북한군 막사에 명중하면서 인민군 36명이 사망했다"라며 "지금도 백골부대는 북한군이 가장 겁내는 부대"라고 증언하면서 당시 사건이 재 조명되었습니다. 박정인 장군의 포격 보복은 현재 '3.7 완전작전'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세 번째, 북한 무장공비 3명의 최후




지난 1992년 5월 22일에 발생된 '5.22 완전작전'으로 많은 국민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이 사건은 당시 한국군 군복 차림으로 위장하여 몰래 침투한 북한군 무장공비 3명이 군사분계선을 통해 월경하여 침투 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이후 백골부대는 당시 사단 정예 수색 그리고 정찰부대를 현장에 투입시키면서 몰래 침투한 3명의 무장공비들의 퇴로를 차단하는데 성공하였고 아군의 피해가 전혀 없이 3명의 공비를 전원을 사살하는데 성공하면서 월남전을 제외한 군사 작전에서 을지무공훈장의 영애를 받는 최초의 군인을 배출해 내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네 번째, 대간첩/침투작전 대응 우수부대



지난 1997년 7월 16일 한 여름 오전 11시경에 철원군 소재 육군 GP에서 북한군 14명이 중부전선 군사분계선(MDL)을 무단 월경하면서 남, 북한 간 군인들 간에 23분 동안 약 3백여 발의 소총과 포사격이 가해지는 사건이 발생되었습니다. 사건 당시 한국군의 인명피해는 전혀 없었으나 한국군 진지 GP 관측 구의 지하벙커 입구가 일부 파손되는 사고가 발생되었는데요, 하지만 북한군은 이 도발로 인해 3명이 사망하였고 2명이 중상을 입게 되는 등 급하게 퇴각하면서 북한군 관리하에 있는 561GP로 부상당한 장병들을 이송하기 위한 구급차까지 출동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참고로 이 사건은 앞서 소개해 드린 3.7 완전작전 때와 같은 부대였다고 하는데요, 이후 제3보병사단은 북한군 대간첩/침투작전 대응 전군 우수부대로 뽑히게 되었고 귀순한 북한 장교의 증언에 따르자면 한국군 백골부대와 교전이 있을 때마다 참패한 북한군 장교들은 당시 줄줄이 숙청당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다섯 번째, 은근 슬쩍 3사단 백골부대를 피해서 도발하는 북한




한국전쟁 휴전 이후에도 수백 건이 넘는 끊임없는 국지 도발을 자행해온 인민군은 지난 1997년 '7.16 완전작전' 이후 백골부대에게 보복 당하고 2001년 MDL 월경 한차례 빼고는 단 한 번도 백골부대 제3보병사단이 주둔하고 있는 철원군 일대를 대상으로 도발 한 적이 없습니다. 그만큼 북한군은 백골부대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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